차세대
포르쉐의 포뮬러 E 드라이버들은 다가오는 시즌에 신형 레이스카인 975 RSE를 타게 된다. <크리스토포러스>는 바이작 개발 센터에서 이뤄지는 GEN4 레이스카의 기술 개발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포뮬러 E의 워크스 드라이버로 2024년부터 활약 중인 니코 뮐러는 포르쉐의 신형 레이스카 975 RSE를 괴물이라고 부른다. 프로 레이스 드라이버가 한 말이니, 분명 최고의 찬사일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 최고출력 816마력, 최고시속 335km,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단 1.8초 만에 도달하는 가속 성능은 어떤 레이스 드라이버라도 감탄할 수준이다.
이번 미션은 분명하다. 전작인 99X 일렉트릭의 성공을 이어가는 것이다. ‘975 RSE’라는 이름만으로도 방향성이 명확히 드러난다. 올해 75주년을 맞이한 포르쉐 모터스포츠에 대한 오마주이자, 앞으로 전기 레이싱이 새롭게 써 내려갈 성공 스토리를 예고하는 이름이다. 기반은 이미 최근에 마련됐다. 파스칼 베를라인이 2023/2024 시즌 포르쉐 워크스 팀으로는 처음으로 드라이버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을 차지했다. 1년 후, 포르쉐 포뮬러 E 팀은 제조사와 팀 챔피언십을 모두 거머쥐었다. 뿐만 아니라 2026년 5월 기준, 베를라인은 드라이버 순위에서 선두를 달리고 팀 역시 제조사 순위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GEN4 레이스카는 과거 챔피언십 우승 차를 기반으로 꾸준하게 진화한 결과물이다. 2026/27 시즌에는 커다란 윙을 달고 다운포스를 높여 레이스에 나설 예정이다. 외관은 포뮬러원과 비슷해졌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뛰어난 접지력을 확보해 코너를 더 빠르게 공략한다. “포뮬러 E는 10여 년 만에 빠르게 발전해 이제는 공기역학적 다운포스가 필요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포르쉐 모터스포츠의 포뮬러 E 기술 프로젝트 책임자인 올리비에 샹프누아가 설명한다. “하지만 다운포스는 항력을 동반하고 이는 에너지 소비 증가로 이어집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서로 다른 차체 부품으로 구성한 두 가지 에어로 패키지를 개발했습니다. 레이스용으로는 공기저항을 줄인 저다운포스 패키지를, 에너지 소비 영향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예선에서는 더 강한 다운포스를 내는 고다운포스 패키지를 사용합니다. 다운포스가 이전보다 최대 150% 강해졌다는 의미죠.”
메이드 인 바이작:
포르쉐 개발 센터에서 올리비에 샹프누아(연한 파란색 셔츠)의 팀이 포뮬러 E 레이스카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포뮬러 E의 외관은 포뮬러원에 가까워졌지만, 효율성 측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포뮬러원을 뛰어 넘었다. 현재 GEN3 Evo 99X 일렉트릭만 해도 구동계의 효율이 97%를 넘어서는 반면, 지난 세대 포뮬러원 레이스카는 55% 미만에 머물렀다. 포뮬러 E에서는 감속할 때 발생하는 운동 에너지가 회생 제동을 거쳐 배터리에 다시 저장된다. 포르쉐 975 RSE는 회생 제동 시스템이 최대 700kW의 출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51.25kWh의 가용 에너지 저장 용량으로 45분이 넘는 전체 레이스 거리를 완주할 수 있다. 실제로 출발할 때는 레이스에 필요한 에너지의 절반 정도만이 배터리에 저장되어 있는데 이 점이 바로 포뮬러 E만의 독보적인 특징이다. 다시 말해, 포르쉐 975 RSE는 현존하는 가장 에너지 효율적인 포뮬러 레이스카인 셈이다. 새로운 에어로 패키지는 다운포스가 증가해 이전보다 바람에 더 강하게 맞선다. “975 RSE는 이전 모델보다 최고출력이 71% 더 높습니다“라고 샹프누아가 덧붙인다.
내구성은 높이고, 무게와 비용은 낮추고
복잡한 개발 과정:
테스트 코스에서 첫 1km를 주행하기 전까지 시뮬레이터와 테스트 벤치에서 해야 할 작업이 많다. 이 과정을 거치며 975 RSE는 단기간에 완성도를 높인다.포뮬러 E의 핵심은 개발자와 드라이버가 규정으로 정해진 에너지로 최대한의 효율을 이루는 데 있다. FIA가 레이스카의 수많은 공통 부품을 규정하고 있어서, 자체 부품 개발로 성능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를 제한한다. GEN3에서 GEN4로 넘어오면서 공동 부품 사용 방식에 약간의 변화만 있을 뿐 섀시, 공기역학 설계, 타이어, 배터리는 모든 팀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효율성이 극한 수준에 이르면서 GEN4에서는 무게, 내구성, 비용 등 다른 요소가 더욱 중요해졌다. 이는 양산 전기차 개발 방향과도 매우 유사하다. “자체 개발 비중은 늘었지만, 전체 부품 패키지의 무게 증가는 5kg으로 제한하죠. 그래도 많은 부품을 경량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975 RSE의 개발은 2024년에 시작되었고, 같은 해부터 시뮬레이터 작업도 병행됐다. 동시에 포르쉐는 GEN3 개발에 매진하고 있었다. 2024년, 팀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치열하게 경쟁했고, 파스칼 베를라인은 드라이버 월드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동시에 GEN3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GEN3 Evo 개발 역시 진행되었다. 레이스카 개발은 민첩성과 다양한 요구사항 측면에서 양산 스포츠카 개발과 유사하다. 기존 모델을 기반으로 작업을 진행하며, 제품 업그레이드를 시장에 선보이고, 이미 차세대 모델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모터스포츠에서는 주기가 더 짧다. “2024년 여름, 차세대 신형 레이스카에 대한 첫 공식 데이터를 받았습니다”라고 샹프누아가 말한다. “개발 과정의 중대한 전환점이었죠.” 이제 본격적인 계산과 초기 테스트를 디지털 방식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 모델:
드라이버들은 현재 99X 일렉트릭의 스티어링 휠을 이용해 레이스카의 수많은 구성 요소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 975 RSE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할 예정이다.엔지니어들은 GEN3 Evo 레이스카 최종 버전의 파워트레인을 기반으로 개발을 시작했다. 포르쉐는 자체 개발한 뒷차축 전기 모터, 변속기, 차동기어, 구동축, 뒷차축의 기타 구동 부품을 비롯해 후면부 냉각과 서스펜션 부품을 레이스카에 적용할 수 있다. 이밖에 전체 운영 소프트웨어도 포뮬러 E에서 중요한 기술적 성공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975 RSE의 제어 장치에는 150만 줄이 넘는 방대한 코드가 담겨 있고 100개 이상의 개별 모듈이 각각 특정 기능을 수행한다. 샹프누아는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소프트웨어가 바퀴에 전달되는 동력을 극대화합니다. 포뮬러 E 팀 내 자체 소프트웨어 개발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죠. 변화와 새로운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개발 속도도 높일 수 있습니다.
” 모든 과정을 자체 처리하는 덕분에 시즌 동안 축적된 지식이 그대로 레이스 운영 지원팀에 전달된다. “팀만의 이런 노하우가 포뮬러 E에서 제조사 사이의 경쟁력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새로운 차원의 회생 제동
페달 테스트 벤치:
감속이 주로 회생 제동을 통해 이루어지더라도, 브레이크 압력이 매우 높은 경우가 많아 기계식 브레이크는 가장 엄격한 요구 사항을 충족해야 한다.제동 과정에서 발생한 에너지를 다시 배터리로 회수하는 기술도 소프트웨어로 제어한다. 에너지 회수는 서킷뿐만 아니라 도로에서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인데, 코너 진입 전에 더 많은 에너지를 회생할수록 다음 직선 구간에서 더 오랫동안 최고출력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975 RSE는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 덕분에 회생 제동 출력이 최대 700kW에 이른다. 실제로 신형 포뮬러 E 레이스카의 레이스 에너지 중 50% 정도가 회생 제동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놀라울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진정한 회생 제동 성능은 뒷차축에 달린 오일 냉각식 영구 자석 동기 모터에서 나온다. 이 모터 하나만으로도 최대 350kW의 에너지를 회수할 수 있다. 강력한 성능에도 과열되지 않는 이유는 직접 오일 냉각 방식 덕분이다. 비전도성 오일인 냉각 매체가 직접 고정자 권선을 따라 흐른다. 즉, 열이 실제로 발생하는 지점을 직접 냉각하는 구조다.
만약 워터 재킷 냉각 방식으로 전기 모터가 동일한 성능을 유지하려면, 크기가 1.5배 정도 더 커야 한다. 975 RSE의 직접 오일 냉각은 거의 같은 구조로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에도 사용한다. 양산차와 모터스포츠에 함께 사용하는 기술 개발은 포르쉐를 대표하는 특징이다. 이러한 긴밀한 기술 협업은 바이작에 있는 포르쉐 개발 센터의 테스트 벤치에서도 이어져서 스포츠카와 레이스카 부품이 모두 동일한 환경에서 성능 검증을 받는다.
실험실
엔지니어들은 완성차를 출시하기 전에 테스트 벤치에서 성능과 내구성을 평가한다. 스티어링 휠, 섀시와 구동장치의 센서와 같은 부품은 디지털로 시뮬레이션한 자동차 환경인 전자식 루프에 통합된다. 전문가들이 ‘인 더 루프 테스팅(In-the-loop-testing)’이라고 부르는 시스템은 제어 장치와 같은 구성 요소를 대체한다. 그렇기에 자동차가 아직 부분적으로만 존재하는 단계에서도 실험실 내 테스트가 가능하다. 차세대 모델에 이르러 테스트 범위는 한층 넓어졌다. “GEN3도 이미 복잡했지만, GEN4의 시스템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샹프누아가 강조한다. 특히, 차축 차동기어의 조정과 제어 범위가 넓어졌다. 테스트 벤치에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많아질수록 개발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된다. 이 부분도 양산차 개발과 유사한 점이다.
인 더 루프 테스팅:
트랙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테스트 벤치에서 GEN4 레이스카의 구성 요소를 엄격하게 테스트해야 한다. 내구성이 뛰어난 동시에 최대한 가벼워야 한다.
실사 수준:
구동장치 부품의 디지털 트윈은 화면에서 모든 각도로 살펴볼 수 있고, 개별 부품 단위까지 분해해 분석할 수 있다.시뮬레이션이 현실로
엄밀히 따지면 테스트 벤치는 실제 주행 환경과 다르다. 최첨단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더라도 여전히 실제 상황과 2~3%의 차이가 있어서 반드시 테스트 주행이 필요하다. 특히 미세한 차이만으로도 승패가 갈리는 모터스포츠에서는 더 중요하다. 니코 뮐러와 파스칼 베를라인은 모든 시스템을 최종 조정하기 위해 2025년 11월부터 서킷에서 975 RSE를 직접 테스트하고 있다.
첫 공개:
포르쉐 포뮬러 E 팀은 975 RSE로 새로운 기준을 세우며 2026년 12월에 새 시즌을 시작할 예정이다.그들은 신형 레이스카의 성과에 매우 만족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중들이 이 차에 열광할 수 있도록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샹프누아는 새 차량의 랩타임이 포뮬러 2 수준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관중들은 향상된 공기역학 덕분에 훨씬 빠른 코너링을 직접 목격하게 될 것이며, 최적화된 퍼포먼스를 바탕으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인 가속도도 체험하게 될 것이다.
팬들이 그 순간을 목격하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 2026년 12월, GEN4가 출발선에 서고, 포르쉐 포뮬러 E 팀이 피트 박스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순간. 그리고 마침내 니코 뮐러와 파스칼 베를라인이 975 RSE를 세상으로 내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