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ophorus Moments: 원메이크 시리즈 레이싱의 시작 

“자동차 전화는 차세대 혁신 제품이 될 것이다 ”, “항공기 엔진을 장착한 포르쉐가 도약을 앞두고 있다”, “연방도로청의 조사에 따르면, 독일의 고속도로는 대부분 속도 제한이 없는데도 세계에서 안전한 도로 중 하나로 꼽힌다.” <크리스토포러스> 201호에 실린 소식은 독자를 순식간에 1980년대 중반으로 이끈다.

   

발행 호: Christophorus No  201
연도​​​​​​​: 1986년 7월
주제​​​​​​​: 944 터보 컵

당시 표지를 장식한 모델은 944 터보 컵이었다. ‘희망의 컵’이라는 제목 아래, 201호는 1986년에 창설된 포르쉐의 첫 원메이크 컵 대회를 집중 조명했다. 저자 위르겐 피피히는 기사에서 “젊은 유망주, 베테랑 드라이버,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원메이크 컵의 강자, 과거 챔피언까지 포르쉐의 부름에 즉각 응답했다”고 회상한다. 뉘르부르크링에서 열린 첫 번째 연습 주행 때는 동일 사양의 944 터보 39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동일한 성능과 기술로 맞붙는 상황은 당연히 치열하고 박진감 넘치는 접전을 펼치기에 이상적인 조건입니다”라고 피피히는 덧붙였다. “관중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치열한 레이스입니다.” 연습 주행뿐만 아니라 뉘르부르크링에서 열린 첫 공식 레이스도 성공적으로 치렀다. 게스트 드라이버 한스-요아힘 슈투크의 지원도 한몫했다. 레이스의 성공으로 생겨난 열정과 관심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0년, 카레라 컵이 944 터보 컵의 뒤를 이으며 오늘날 포르쉐가 개최하는 다채로운 원메이크 레이스 시리즈의 기반이 되었다.

희망의 컵

포르쉐 944 터보컵은 단순한 원메이크 레이스를 너머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유망주부터 노련한 베테랑, 전투적인 원메이크 레이스의 달인, 탄탄한 올라운더, 어제의 챔피언과 내일의 우승자, 엔지니어, 마케팅 전문가, 스폰서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포르쉐의 부름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터보컵는 이들에게 그야말로 새로운 희망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유르겐 피피히

"이번 레이싱 시리즈는 친환경 양산차로 펼쳐집니다. 포르쉐는 이를 기반으로 고부하와 고속 주행 시 촉매 변환기 운용에 대한 기술적 경험을 심화하고자 합니다." 포르쉐 개발을 총괄하는 헬무트 보트 교수는 이 같은 포르쉐의 기술적 목표와 대회의 취지를 밝혔다. 반면 드라이버들은 서로 다른 목표를 품고 출전한다. 독일 르노 5 챔피언이자 이번 대회 최연소 참가자인 22세의 디르크 바그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944 터보컵은 모든 원메이크 시리즈 중에서 드라이버의 기량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가장 도전적인 대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944 터보컵을 선택했죠.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앞으로의 레이싱 커리어에 발판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에센 출신의 하랄트 그로스는 또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는 다년간 수많은 레이스에서 뛰어난 기량을 가감 없이 입증해 온 프로 레이서다. "저는 치열한 경합에 망설임없는 승부사입니다. 42세의  나이에도 아직 젋은 드라이버들과 경쟁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컵 차량 확보에 집중했습니다. 제 목표는 오직 종합 우승입니다. 감사하게도 저를 믿고 전액 지원해 주는 스폰서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제 스폰서도 친환경적인 원메이크 레이스의 취지에 적극 공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레이싱 시리즈는 언제나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습니다." 모터스포츠의 대중화를 위한 포르쉐의 이런 활동은 딜러들과 레이싱 팀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1970년대 당시 그룹 5 클래스에서 완벽하게 세팅된 포르쉐 935를 선보이며 명성을 떨쳤으나, 이후 모터스포츠의 천문학적인 비용 상승으로 철수해야 했던 로이틀링겐의 '맥스 모리츠' 팀도 이 아이디어에 열광했고 차량 4대를 투입하며 트랙으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드디어 승패를 가릴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졌다. 아이펠 레이스의 일환인 신설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양산 트림에 가까운 39대의 동일한 944 터보가 테스트 주행에 돌입했다. 차량은 오직 화려한 스폰서 로고와 저마다의 개성을 담은 독창적이고 세련된 외관 디자인으로만 구분할 수 있다.

동일한 출력과 동일한 기술 조건에서는 그야말로 치열한 근접전이 펼쳐진다. 바로 관중들이 갈망하는 진정한 승부의 현장이다. 주최 측은 더욱 흥미진진한 경기를 위해 프로젝트 매니저인 디터 글렘저의 총괄 하에 스페셜 게스트 드라이버들을 초청하기로 결정했다. 라운드마다 서로 다른 유명 인사가 참가해 기량을 선보이는 이벤트다. 이번 라운드에서는 모터사이클 스타 마틴 비머가 (시험 삼아) 두 바퀴가 아닌 네 바퀴로 달려달라는 제안에 흔쾌히 수락했다. "어차피 자동차 레이스에 나갈 거라면, 다른 경쟁자들이 아직 몸을 풀기 전인 지금이 가장 유리하죠." 이 모터사이클의 귀재는 빗속에서 치러진 첫 번째 연습주행에서 15위에 그쳤다. 하지만 동료인 한스 요아힘 슈투크가 유용한 조언을 해주었고, 디터 글렘저는 두 번째 연습주행 중 적절한 타이밍에 홈이 없는 슬릭타이어로 교체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사이 트랙은 마르기 시작했고, 다른 경쟁 차량들이 흘린 오일이나 이물질이 없는 최적의 상태였다. 비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약 1초 차이로 연습주행 최고 랩타임을 기록했다. 모터사이클 선수가 내로라하는 자동차 드라이버들을 모두 제치면서 포르쉐 944 터보컵에서 첫 번째 이변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저도 솔직히 이렇게까지 좋은 결과를 얻을 줄은 몰랐어요. 한스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뮌헨 출신의 이 레이서가 겸손하게 소감을 밝혔다. "모터사이클은 코너의 거의 클리핑 포인트 직전까지 강력한 제동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자동차는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차체가 불안정해지며 오버스티어가 발생해요. 그래서 직선 구간에서 제동을 끝내고, 핸들을 꺽음과 동시에 아주 빠르고 부드럽게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합니다."

비머의 기록은 불과 몇 십분의 1초, 아니 몇 백분의 1초 차이로 그 뒤를 바짝 쫓던 프로와 세미프로, 신예 드라이버, 아마추어 레이서들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경기 전 첫 번째 코너에서는 무리하지 말고 안정적인 주행을 유지하라던 디터 글렘저와 각 팀 오너들의 거듭된 당부는 출발 신호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스타트 그리드에서 우려를 표했던 야마하 소속의 팩토리 드라이버는 순식간에 양측에서 압박해오는 대형에 갇혀  4위로 밀려났다. 나머지 차량들은 서너 줄의 대열로 빽빽이 늘어선 채 첫 번째 시케인을 향해 무섭게 돌진했다. 바닥에서 자욱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백미러가 공중으로 날아다녔으며, 방향지시등 커버는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튀었다. 도어 핸들이 맞부딪히는 날카로운 쇳소리도 이어졌다. 비머는 이 격전 속에서 9위로 출발해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던 하랄트 그로스의 레코드 라인에 진입했다. 그로스는 비머를 거칠게 밀어내며 코스 밖으로 튕겨 보냈고, 그 여파로 자신도 런오프 구간까지 밀려나야 했다. "브레이크가 충분히 예열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비머 선수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그리고 경기 중에 접촉이 있었던 다른 드라이버들에게도 앙해를 구하고 싶습니다"라며 그로스는 경기 후 소심한 모습으로 사과했다.

피트스톱 후 꼴찌로 경기에 복귀한 비머와 그로스를 포함해 많은 차들이 뉘르부르크링의 진흙 가득한 잔디밭으로 이탈했다. 일부는 노면에 유출된 오일로 인해 미끄러졌고, 일부는 944의 한계를 넘나들다 스핀을 하거나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가장 안타까운 상황은 차량에 아무런 파손이 없는데도 트레드가 없는 슬릭타이어 때문에 진흙 구덩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고립된 경우다. 반면 이 혼란 속에서도 침착하게 주행을 이어간 두 명의 드라이버가 돋보였다. 바로 우리가 결코 잊지 못할 만프레드 빈켈호크의 동생 요아힘 빈켈호크와, 순위 경쟁 밖에서 몇 랩을 돌며 페이스를 조절한 포르쉐 팩토리 드라이버 한스 요아힘 슈투크였다.

26세의 요아힘 빈켈호크는 안정을 확보하며 최초의 터보컵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2위와 3위는 스웨덴 포뮬러 3 출신의 벵트 트레가르트와 하랄트 그로스에게 돌아갔다. 한편 마틴 비머는 피트스톱으로 인해 아쉽게 순위권에서는 멀어졌으나, 최상위권의 주행 페이스를 따라잡는 기량을 관객들에게 입증했다.

현 세계 내구레이스 챔피언인 한스 슈투크는 카메라를 장착한 944 터보를 타고 서킷을 주행했다. 그는 "후세를 위해 가장 중요한 장면들을 담아냈습니다"라며 기뻐하며, 이 시리즈와 참가 선수들을 향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술적 가치와 난이도 관점에서 최정상급의 컵이었습니다. 저에게는 1979년의 전설적인 프로카 시리즈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었습니다. 터보 차량들은 속도가 엄청난 데다 한계 주행 상황에서 제어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접지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사실상 제어가 불가능하여 스핀으로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에는 노련한 프로 선수들이 강세를 보일 것입니다."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링에서 피해 상황을 집계해 보니 7대의 차량이 심하게 파손되었고, 또 다른 10대는 대규모 수리를 거쳐야 했다. 휀더와 도어의 교체 작업은 이미  당연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베를린 아부스 서킷에서 열릴 다음 레이스를 앞두고 긴급한 지시가 내려졌다. 대당 7만 8,900마르크에 달하는 이 고가 스포츠 장비들의 수리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신중하게 주행해 달라는 당부였다. 특별히 소집된 드라이버 브리핑에서 디터 글렘저 프로젝트 총괄은 선수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강조했다. 약 4km에 달하는 아부스의 직선 구간에서 촉매 탑재 터보 차량들이 슬립스트림을 타면 5단 기어 레드존까지 풀 가속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또한 직선 주로의 끝에는 1단까지 급제동해야 하는 헤어핀 커브가 있다. 포르쉐의 고객 서비스 책임자인 테오 캅펜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기어비 차트를 토대로 계산해 보면, 해당 직선 구간에서의 최고 속도는 시속 270km에 달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바이작 부서 동료들 중 누구도 그 속도에서 무리 지어 달리고 싶지 않을 거예요." 포드 레이디스 컵 챔피언 경력을 보유한 아네테 메우비센 역시 이 우려에 공감했다. "서너 줄의 대열로 빽빽이 늘어선 채 몇 센티미터 간격만 두고 직선 구간을 고속 질주할 때는 정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요. 슬립스트림을 이용하다가 기회를 봐서 추월해야 하니까요. 한 명이라도 기어 변속 실수를 하거나 순간적으로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기라도 하면, 끔찍한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아부스에 참가한 컵 드라이버들은 전반적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게스트 드라이버이자 연습주행 최고 기록을 세운 요헨 마스는 이렇게 증언했다. "상위권 선수들의 기량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거칠게 몰아붙이면서도 페어플레이를 유지했습니다. 원래 본선에서는 선두를 유지하기보다, 안전거리를 두고 지켜보다가 마지막 코너들에서 승부를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코너를 돌 무렵 갑자기 네 대의 차량이 순식간에  제 옆을 지나갔습니다. 완전히 갇혀버리는 바람에 손쓸 도리도 없이 당하고 말았죠." 마스는 결국 5위로 경기를 마쳤다

다른 드라이버들도 요헨 마스와 같은 전술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 모양이다. 아부스 레이스에서는 이례적일 만큼 선두가 수십 번씩 뒤바뀌었다. 그중에서도 맥스 모리츠 팀의 23세 외르크 반 오멘은 줄곧 최선두 자리를 지켰다. 경기 후반까지 우승 후보로 달리던 그는 마지막 순간 치명적인 착각을 하고 말았다. "한 바퀴가 더 남은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랩에 접어들 때 선두를 지키지 않았죠." 그는 이후 마인츠핀텐 대회에서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연습주행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본선에서도 안정적인 경기를 펼치며 가볍게 폴 투 윈 우승을 거두었다.

아부스의 불운은 선두권의 강자로 자리매김한 또 다른 스피드 레이서, 롤란트 아슈에게도 찾아왔다. 포르쉐에게 엔진 출력이 부족하다며 늘 농담 섞인 불평을 늘어놓던 이 투어링카 전문가는 직선 구간에서 요헨 마스와 접촉 사고를 냈다. 슈바벤 출신의 아슈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포르쉐 레이스에는 사실 특별한 전술이 없습니다. 첫 랩부터 마지막 랩까지 완벽하게 집중해야 하고, 항상 풀 가속으로 달리며 틈을 절대 주지 말아야 합니다." 마인츠에서 그는 이를 그대로 실천했고,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마지막 랩까지 최상의 제동력을 유지하고 싶다면, 브레이크 바이어스에만 신경써야 합니다." 중상위권에 확고히 자리를 잡은 포르쉐의 베테랑이자 노장 에드가 되렌이 덧붙여 말했다. 결국 컵 버전 944 터보로 초고속 랩타임을 기록할 수 있는 완벽한 모범 답안은 없는 셈이다. 한계를 뛰어넘는 과감함과 목숨을 건 베팅이 필요하지만, 문제는 접지력의 한계가 매우 칼날처럼 얇다는 사실이다. 이 조건에서 가장 이상적인 밸런스를 구현한 드라이버가 바로 프로 선수인 하랄트 그로스(오버마이어 레이싱)였다. 그는 베를린에서 스타트 직후 일부러 8위까지 물러나며 철저히 패를 숨겼다. 침착하고  끈질기게 선두권을 향해 치고 올라가더니, 레이스 종료를 단 세 코너 남겨둔 시점에 요아힘 빈켈호크(슈트렐레 팀)와 외르크 반 오멘을 추월하며 순식간에 맨 앞으로 치고 나갔다.

뉘르부르크링과 베를린, 마인츠핀텐에 모인 관객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명승부에 열광했다. 특히 베를린에서는 볼거리가 더해져 관중석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일요일에 팬들에게 줄거움을 선사했다. 바로 초대형 멀티비전 스크린이다. 무려 4km나 떨어져 있는 남쪽 커브 구간의 생생한 컬러 영상을 관중석으로 실시간 보여주었다. 이 대형 스크린의 도입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향후 모든 경기 주최 측에 도입을 적극 권장할 만하다. 현대 모터스포츠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

944 터보컵도 마찬가지다. 이 대회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밀착 접전이 펼쳐지고 참가자에게 동등한 우승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드라이버에게 5,000마르크 상당의 우승 상금을 지급한다. 바이작에서 파견된 엔지니어들은 엄격한 검수를 통해 혹시 모를 부정행위나 차량 규정 위반을 철저히 차단한다. 이에 유망주부터 노련한 베테랑, 전투적인 원메이크 레이스의 달인, 탄탄한 올라운더, 어제의 챔피언과 내일의 우승자, 엔지니어, 마케팅 전문가, 스폰서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이 대회는 말 그대로 '희망의 컵'이다. 그리고 첫 레이스를 마친 지금 그 모든 기대를 완벽하게 증명해 냈다.

Rafael Krötz
Rafael Krö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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