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과 용기
앞쪽 엔진과 뒤쪽 변속기를 견고한 축으로 연결한 트랜스액슬. 50년 전, 포르쉐는 924를 선보이며 기술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 트랜스액슬은 911과 더불어 또 하나의 스포츠카 세계를 개척하면서 포르쉐의 전환기를 이끌었다.
새로운 시대:
924는 1976년 중반부터 포르쉐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프런트 엔진, 트랜스액슬 콘셉트, 분명한 라인, 승객과 수하물을 위한 넉넉한 공간. 파리 시내 도로에서 최신 포르쉐는 마치 미래를 향한 비전처럼 보인다.포르쉐는 1970년대 바이작에서 얼핏 보기에 지금까지 알려진 브랜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차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실루엣이나 리어 엔진 구조도 아니다. 대신 날카롭게 다듬은 라인과 긴 보닛이 특징인 차체에 커다란 유리 테일 게이트를 갖췄다. 2+2 시트를 얹고 일상의 실용성을 새롭게 정의하는 진정한 스포츠카다. 포르쉐는 이후 한 광고에서 ‘패밀리 스포츠 왜건‘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는 하나의 혁명이었다.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젊은 하름 라가이는 바이작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훗날 전체 부서를 총괄하게 된다. 혁신적인 새로운 창조물에 관해 그가 묘사한 내용을 지금 되돌아보면 오히려 과소평가한 듯하다. “924의 디자인은 순전히 직관적으로 탄생했습니다. 물론 디자인이 좀 놀라웠죠”라고 라가이가 회상하며 말한다
이 신제품은 새로운 정의를 세워야 하는 점에서 파격적이었다. 포르쉐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엔진 위치? 아니면 자동차가 전달하는 감성? 아이디어의 명료함? 조화로운 디테일? 아니면 단순히 퍼포먼스일까?
924는 원래 폭스바겐이 주문한 개발 프로젝트(EA 425)였다. 그렇기에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질문이 더 크게 제기되었고, 이는 디자이너에게 꿈같은 작업이었다. “디자인 제안서를 제출할 때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참고할 만한 자료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라가이가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폭스바겐 역사상 이 스포츠카 콘셉트를 위해 계승할 수 있는 선례가 없었다. “말 그대로 백지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다만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엔진, 라디에이터, 변속기, 차축, 무엇보다 시트 위치를 반영한 기술 레이아웃 패키지는 지정된 상태였다. 대량 양산 부품도 적용 가능해야 하고 생산 계획도 이미 확정되어 있었다.
혼합 복식:
포르쉐는 924와 924 터보(오른쪽, 1978년부터, 역동적인 투톤 디자인)로 젊은 층을 겨냥한다. 당시 광고에서 강조된 모델의 세련된 면모는 시대정신을 상징한다.1960년대 914는 폭스바겐과 포르쉐 협력의 출발점이 되었다. 기본 아이디어는 전통적인 포르쉐의 전략과 일치했다. 포르쉐의 엔지니어링 기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시너지 효과를 얻고, 신뢰성을 높이고자 검증된 대량 양산 기술을 사용했다. 914는 처음부터 협력 프로젝트로 기획된 반면, 924는 원래 폭스바겐 브랜드로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었다.
높은 판매량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세로 배치 미드십 구조의 914를 ‘진정한 포르쉐’로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폭스바겐 4기통 엔진 모델의 생산대수는 11만5,600여 대, 포르쉐 6기통 엔진 914/6 모델은 3,300여 대였다. 이는 대량 양산 제조사인 폭스바겐에는 경제적으로 충분하지 않은 생산량이었다. 결국 폭스바겐은 리어 엔진 구조에서 벗어나, 프런트 엔진과 수랭식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
“말 그대로 백지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하름 라가이
프로젝트 EA 425:
훗날 924가 되는 초기 점토 모형, 디자이너 하름 라가이(가운데, 검은색 스웨터)와 그의 팀. 이 모델은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았다”라고 라가이가 말한다.포르쉐의 순간
1975년, 토니 슈뮈커가 폭스바겐의 회장으로 취임했으며, 루돌프 라이딩의 후임자인 그는 EA 425 프로젝트를 중단시켰다. 1970년대 첫 번째 에너지 위기와 이에 따른 고객들의 구매 위축, 그리고 모델 정책상의 이유가 작용했다. 당시 폭스바겐은 이미 골프 기반의 스포츠 쿠페인 시로코를 개발한 상태였다. 그러자 포르쉐는 개발 비용을 스스로 부담하며 프로젝트를 되사들였고, 이를 진정한 포르쉐로 탈바꿈시키기 시작한다. 라가이가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디자인과 비율이 이미 포르쉐에 아주 잘 맞아서 콘셉트를 변경하지 않고도 계속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어차피 개발이 상당히 진척된 단계여서 변경 자체가 더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라가이에 따르면 1970년대에는 포르쉐의 디자인 DNA가 오늘날처럼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다. 시각적인 기준 모델로는 전통적인 디자인 언어를 품은 911이 유일했기에 새 프로젝트 디자인을 변형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훗날 924라는 이름이 붙은 이 모델은 아나톨 라핀이 이끄는 디자이너와 설계자들에게는 임시방편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 이 모델은 미래를 의미했습니다”라고 라가이는 말한다. 924는 단순한 신형 모델이 아니었다. 비록 처음에는 포르쉐로 기획된 모델은 아니었지만, 포르쉐가 새로운 콘셉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전통에서 벗어나 디자인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시작한 순간을 상징한다. 924에서도 스포츠카의 DNA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911이 브랜드의 심장이라면, 924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용기를 구체화하는 모델이었다.
포르쉐 역사에서 다시 한번 브랜드의 운명이 결정될 또 다른 순간이 찾아왔다. 당시 자동차 업계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신흥 시장, 새로운 고객 요구, 무엇보다 소음과 배기가스 배출을 비롯해 충돌 안전성에 관한 새로운 법적 규제가 등장했다. 포르쉐 역시 기술적, 경제적, 전략적으로 변화해야 했다.
개방감:
포르쉐의 모든 트랜스액슬 모델과 마찬가지로 968 컨버터블(1991년부터)은 역동성과 여행의 편안함을 추구한다. 이 콘셉트 덕분에 설계자는 매우 다양한 파생 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924와 거의 동시에 개발한 더 크고 고급스러운 928은 강력한 V8 엔진을 얹은 2+2 시트 그란 투리스모였다. 주요 디자이너는 아나톨 라핀, 스튜디오 책임자 볼프강 뫼비우스, 한스-게오르크 카스텐이었다. 이후 하름 라가이도 928 GTS 디자인에 기여했다. 하름 라가이는 두 신형 모델이 “패키지와 기본 구조는 유사하지만, 디자인 언어는 완전히 다릅니다”라고 강조한다. 디자이너에 따르면, ‘당시 포르쉐의 디자인 언어가 상당한 개방성을 허용한 또 다른 증거’였다. 두 모델은 오랜 시간 검증된 공랭식 리어 엔진이라는 전통을 고수하던 911과 함께 브랜드의 새로운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포르쉐의 정체성을 희석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임무도 주어졌다. 포르쉐 기업 기록 보관소 및 컬렉션 책임자인 프랑크 융은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은 오늘날까지도 혁신적이고 현대적이며, 두 자동차 모두 당연히 점점 더 많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술 측면에서도 장기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한다.
조용한 소리:
1988년경. 포르쉐 944 S2의 소음 감소를 연구하는 음향 실험실에서 정밀 작업. 새로운 법적 요건을 충족하면서 최상의 성능을 유지해야 했다.포르쉐의 방향
이에 대한 해결책 중 하나로 나온 것이 바로 트랜스액슬 구조이다. 시장 역사상 처음으로 엔진이 승객석 뒤쪽에서 벗어났다. 포르쉐 엔지니어들은 엔진과 변속기를 앞차축에 무거운 단일 장치로 고정하는 일반적인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다소 생소한 구조였는데, 엔진을 전면에 배치하고 변속기는 뒷차축에 놓는 것이다.
928의 진화 단계:
1:5 축소 모형, 1:1 점토 모형, 풍동 공기역학 시험용 프로토타입, 1977년경(아래).“트랜스액슬 개념 도입은 개발 초기에 확정되었습니다.” 롤란트 쿠스마울
포르쉐는 트랜스액슬이 미래를 새롭게 정의할 기술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어느 시점에 내린 결정이 아니라 개발 초기부터 확고한 신념이었습니다.“ 롤란트 쿠스마울이 말한다. 포르쉐에서 주행 테스트 엔지니어로 근무했던 그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도 종종 공장 업무를 위해 서킷과 랠리 코스에서 활동했다. 쿠스마울은 랩 타임, 조향각, 슬라롬, 일정한 드리프트 각도를 기준으로 성능 지표, 주행 특성, 한계점을 측정했다. 트랜스액슬 구조의 최대 장점은 앞차축과 뒷차축의 균형 잡힌 무게 배분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쿠스마울은 924를 ‘제어하기 쉽고 순종적이고 빠른 차’로 기억하며 극찬한다. “924는 고속 주행을 비롯해 측풍을 받거나 차로를 바꿀 때도 잘 제어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개발한 928에도 포르쉐 엔지니어들은 트랜스액슬 구조를 적용했다. “상대적으로 무겁고 큰 V8 엔진을 후방에 배치하는 구조는 아예 논의조차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쿠스마울이 설명한다. 엔진과 변속기 사이를 단단한 축으로 연결한 데서 비롯된 ‘구조적 차체 ’와 ‘균형 잡힌 무게 배분’은 928의 주요한 장점으로 인정받았다.
패밀리 스포츠 왜건:
광고 슬로건을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924 – 젊은 가족을 위한 포르쉐. 아이들과 모든 짐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었는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924가 패밀리카로 어울리는‘엔트리급 포르쉐’ 역할을 하며 브랜드에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했다면, 928은 고속 투어링카로서 상위 시장을 공략했다. 실내 디자인이 특히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럭셔리 2+2 시트 모델은 911과는 또다른 시장 세그먼트에서 경쟁했다.
당시 에른스트 푸어만 회장 중심의 포르쉐 경영진은 고급화, 편의성, 안전성에 대한 전 세계적 요구가 높아지는 흐름 속에서 928이 그 해답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경험 많은 기술자이자 포르쉐 가문 출신이 아닌 최초의 포르쉐 경영자 푸어만은 911을 단종 모델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객의 반응은 달랐다. 리어 엔진 클래식 모델인 911은 G 시리즈로 이어지며 당시 10년 넘게 생산 중이었고, 전 세계 포르쉐 팬 사이에서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푸어만의 후임자인 페터 W. 슈츠(1981년부터 1987년까지 회장)는 포르쉐 최고경영자로 취임한 지 3주 만에 이미 내린 911 단종 결정을 철회했다. 판단이 옳았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한다. 911은 60년 이상 자동차의 아이콘이자 스포츠카의 대명사로 인정받아 왔다.
연속 우승자:
미국 여성 트레이시 오스틴은 1979년 필더슈타트에서 열린 포르쉐 테니스 그랑프리에서 우승해 포르쉐 924 터보의 주인공이 되었다. 1981년까지 열린 네 번의 대회에서 오스틴은 모두 우승했다. 테니스 그랑프리는 지금도 해마다 개최되고 있고, 올해는 4월 11일부터 19일까지 슈투트가르트 포르쉐 아레나에서 열린다.포르쉐의 미래
1980년대에 접어들며 포르쉐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스포츠카 세계를 기반으로 발전한다. 924가 수익 창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실은 생산 수치를 보면 알 수 있다. 1976년부터 1988년 사이에 생산한 대수는 다양한 파생 모델을 합쳐 15만여 대에 이른다. 이는 같은 기간에 생산한 911과 거의 맞먹는 수치다.
이를 통해 트랜스액슬 제품군의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이후 928 외에도 4기통 모델 시리즈인 944와 968이 추가되었다. 기술 품질과 명확한 디자인 라인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모델 시리즈 사이에 충분한 시너지 효과를 활용하지 못했다. 각 자동차를 거의 독립적인 프로젝트처럼 개발하는 바람에 모델마다 자체 엔진, 차체 부품, 생산 공정을 갖추느라 비용이 많이 증가했다. 트랜스액슬 모델은 브랜드의 비전과 현실이 어긋나는 어려운 시기를 맞이했다.
진화:
하름 라가이의 924 상세 스케치(당시 간편하게 적고자 ‘Lagaay’로 표기함). 팝업 헤드라이트(중앙)와 큰 유리 돔(아래)이 있는 뒷부분은 초기부터 특징적인 디자인이었다.
당시 경험은 오늘날 소중한 교훈이 되었다. 포르쉐는 모델 라인업을 확장하면서 트랜스액슬 시대와는 완전히 다르게 접근해 모듈식 플랫폼 전략을 채택했다. 여러 모델이 섀시 부품, 전자 시스템, 구동계 부품 같은 핵심 기술 아키텍처를 공유한다. 공유 플랫폼 덕분에 개별 시리즈의 독자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규모의 경제, 개발비 절감, 모델 주기 단축이 가능해졌다.
“현재 관점에서 보면, 트랜스액슬 모델은 아주 우아하게 세월을 견뎌냈습니다.” 하름 라가이가 자부심을 담아 말한다. 디자이너가 꼽은 장점은 넓은 실내 공간, 2+2 콘셉트, 넉넉한 트렁크, 특별한 디자인 요소이자 도전 과제였던 큰 리어 윈도, 연비 효율성과 편안함을 겸비한 인상적인 역동성 등이다. 엔지니어이자 레이스 드라이버인 롤란트 쿠스마울은 트랜스액슬 모델이 서킷과 랠리 코스에서 보여준 성능을 다시금 칭찬한다. 그는 무엇보다 ‘한계 영역에서 쉽게 제어할 수 있었던’ 924 터보 같은 고성능 파생 모델을 떠올릴 때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1982년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그와 코파일럿 유르겐 바르트는 924 카레라 GTS로 종합 순위 10위를 차지한 후, 이 차가 ‘진정한 포르쉐’라고 확신했다.
한계 영역:
롤란트 쿠스마울이 924 터보로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엔지니어이자 레이스 드라이버에게는 ‘한계 상황에서도 쉽게 다룰 수 있는 진정한 포르쉐’였다회사 역사가인 프랑크 융은 다른 점을 강조한다. “911은 포르쉐 브랜드의 핵심이지만, 한 브랜드가 아이콘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모든 변화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회사는 중요한 시기에 브랜드를 재정의해야 했고, 911은 그대로 유지하되 회사를 미래로 이끌어갈 기술 콘셉트를 구축하는데 집중했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2000년대부터 오늘날 4도어 프런트 엔진 스포츠카의 토대를 마련했다. “오늘날에는 전략적 용기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큰 모험이었습니다.”
트랜스액슬 모델은 출시 50년 만에 부활을 맞이했다. 현대적인 감성을 전하고, 과거에는 과소평가 받았을 지 모르는 실용적인 장점을 갖췄다. 이는 엔진 위치에 구애받지 않고 최상의 해결책을 추구하는 포르쉐의 본질을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