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포르쉐의 시간은 계속된다 

포르쉐의 전통과 미래를 제시하다: 포르쉐 스튜디오 청담에 특별한 전시가 열렸다. 포르쉐의 현재와 미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시간이랄까. 그러기 위해서 단 두 대면 충분했다. 신형 911 GT3와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의 조합. 두 대가 한 자리에 모이자 의미가 형성됐다. 

   

흥미로운 조합이다. 포르쉐 911 GT3와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가 한 공간에 놓여 있다. 하나는 9,000RPM까지 맹렬히 도는 자연흡기 엔진이 심장인 스포츠카, 다른 하나는 전기모터를 품고 형태도 신선한 CUV다. 중요한 건 둘 다 포르쉐 엠블럼이 또렷하다는 점이다. 극명한 대비이자 그럼에도 하나로 관통하는 부분이 있다. 둘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 생각이 많아진다. 포르쉐가 선보인 신차 두 대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 무엇을 나열하고 조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니까. 포르쉐 스튜디오 청담의 2층을 꽉 채운 두 대의 의미는 명확하다. ‘스포츠 모빌리티 오브 투데이 앤 투모로우(Sporty Mobility of Today and Tomorrow)’. 전시의 슬로건이 선명하게 설명한다. 포르쉐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그에 걸맞은 신차 두 대. 

포르쉐 레이싱 DNA의 정수

미래를 보기 전에 현재부터 봤다. 신형 포르쉐 911 GT3. 8세대 911을 기반으로 한 첫 번째 GT 모델. 보통 GT 모델이라고 하면 장거리를 빠르고 편하게 달릴 자동차에 붙인다. 포르쉐는 스포츠카의 정수에 더 깊게 다가가는 고성능 모델에 부여하는 증표다. 스포츠 주행에 더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을 위한 머신. 고성능 자연흡기 엔진의 순수한 짜릿함을 고수하는 머신. 포르쉐 레이싱 DNA를, 어쩌면 가장 고집스레 지키는 머신. 포르쉐의 역사이자 현재.

911 GT3는, 어쩔 수 없이 특별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4.0리터 6기통 수평대향 자연흡기 엔진 덕분이다. 전기모터는 차치하고라도, 터보차저로 출력 높이는 시대다. 고성능 자연흡기 엔진의 존재는 그 자체로 남다르다. 한 시대의 정점을 상징하는 존재랄까. 점점 개체수가 줄어드는 보호종을 보는 애잔함과 몇 안 남은 보물을 만나는 설렘이 공존한다. 깊고 차가운 물빛 같은 파랑을 두른 911 GT3 앞에서, 일단 두근거리는 건 자연스런 반응이다.

용도별로 둘 다

용도별로 둘 다

특별한 시계

특별한 시계

역시 자동차는 신차가 최고라는 말은 스포츠카에도 해당한다. 911 GT3는 앞에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을 적용했고, 새로운 스완 넥 리어 윙을 달았다. GT 레이싱카 911 RSR에서 가져온 디퓨저도 변화의 특징. 다운포스를 강화하고 앞 서스펜션을 바꿔 거동을 다잡았다. 원래 잘 달리던 선수가 신기술을 습득해 자기 기록을 갱신한 그런 상황. 전시된 911 GT3를 보며 9,000RPM까지 가속페달을 밟아보는 상상을 해본다. 옆을 둘러보니 사람들의 표정에서 나만 그런 상상에 빠진 건 아니라고 확신했다. 탄소섬유 지붕, 탄소섬유 사이드미러 커버, 실내를 채운 스포츠 버킷 시트를 보면 누구라도 자기만의 9,000RPM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신형 911 GT3를 더욱 특별해 보이게 하는 건 시계다. 911 GT3 구매 고객을 위해 따로 제작한 ‘911 GT3 익스클루시브 크로노그래프’다. 포르쉐 디자인이 911 GT3의 요소를 시계에 반영해 더 의미를 강조한다. 911 GT3 엔진 커넥팅 로드 소재인 티타늄으로 시계 하우징을 빚었고, 와인딩 로터는 911 GT3의 휠을 떠올리게 한다. 911 GT3 외관 컬러와 같은 다이얼 컬러로 맞출 수 있다는 설명에서 구매자가 더욱 부러워졌다. 오직 911 GT3 구매자를 위한 한정판이니까. 그럴 수 있는 자동차가 몇이나 될까. 포르쉐의 ‘오늘’은 역시 화려하다. 

포르쉐의 확장성을 선보이다

‘오늘’의 화려함을 뒤로 하고 ‘내일’로 나아간다. 몇 걸음 걸으니 포르쉐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에 다다른다. 포르쉐 전기차 타이칸의 두 번째 모델이다. CUV로 다목적성을 염두에 뒀다. 일단 비율이 눈에 띈다. 타이칸에서 짐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뒤를 길게 뺐다. 오프로드 주행도 염두에 둬 지상고도 약간 높다. 그 차이가 새로운 비율을 만들어냈다. 설명만으로는 둔해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타이칸의 날렵한 선에서 확장한 형태이기에 걱정은 금물이다. 포르쉐가 스포츠 왜건을 만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딱 그 느낌. 그러면서 전기모터를 품은 전기차다. 그냥 전기차가 아닌 전기 스포츠카. 포르쉐의 미래를 가늠하게 한다.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다: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다:

타이칸 4 크로스 투리스모는 476마력, 타이칸 4S 크로스 투리스모는 571마력을 발휘한다. 가장 강력한 모델인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는 무려 680마력을 자랑한다. 무시무시한 숫자다. 오버부스트 출력으로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3초. 흥미로운 지점이다. 911 GT3가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4초다.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가 0.1초 더 빠르다는 뜻이다. 널찍한 공간과 다목적 용도라는 푸근한 요소를 품었는데도 더 빠르다. 포르쉐의 미래는 이렇게 강력하다.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는 포르쉐 라인업의 새로운 확장이다. 타이칸이 포르쉐 라인업에서 4도어 스포츠카 역할을 채운 것처럼,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도 없던 영역을 더한다. 굳이 분류하자면 전기 스포츠 왜건이랄까. 파나메라의 영역과 다르고, 카이엔의 영역과도 다르다. 비포장도 무서워하지 않을 매끈한 스포츠 왜건은 다른 브랜드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포르쉐는 전기차를 확장 기회로 삼는다.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는 그 영역 확장의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포르쉐는 앞으로 얼마나 다채로워질까?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를 둘러보는 내내 이런 궁금증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물론 스티어링 휠을 잡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런 점에서 911 GT3를 봤을 때처럼 가속페달을 밟는 자신을 상상하며 설레는 건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도 마찬가지다. 두 모델이 다르지만, 관통하는 지점이다. 포르쉐의 오늘과 미래를 상징하는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유일 테다. 

김종훈(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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