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

포르쉐 GT 모델과 함께한 하루: 포르쉐를 타기 전에는 언제나 두근거린다. 잘 맞물린 기계는 예술품 이상의 감흥을 주는 까닭이다. 그런 포르쉐를 여러 대 탄다면? 게다가 장소가 트랙이라면? 무엇보다 포르쉐 레이싱 DNA를 이어온 GT 모델이라면? 포르쉐 GT 미디어 트랙 익스피리언스는 그 두근거림의 총합을 선사한다.

   

‘목적지까지 1km 남았습니다.’ 내비게이션에서 안내음이 들렸다. 남은 거리가 줄어들 때마다 괜히 두근거렸다. 마치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연인을 만나는 건 아니지만, 연인보다 더 만나기 어려운 건 맞다. ‘포르쉐 GT 미디어 트랙 익스피리언스’ 행사니까. 그냥 포르쉐만으로도 두근거릴 텐데, GT 모델들로 엄선한 트랙 행사다. 포르쉐의 GT란 각 모델 라인업에서도 고성능 모델을 지칭한다. 짜릿한 스포츠카 중에서도 더 짜릿하게 벼린 스포츠카. 출력은 각기 다를지라도 저마다 비수 하나쯤은 품고 있는 모델들. 여느 트랙 행사와는 당연히 마음가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포르쉐의 다른 트랙 행사와도 심장박동의 데시벨이 다르다. 인제 스피디움 입구를 지나면서 손목도 주물렀다. 잘 타고 싶어서.

포르쉐 GT 미디어 트랙 익스피리언스는 신형 911 GT3 출시에 맞춰 열렸다. 8세대 911을 기반으로 한 911 GT3는 상징적인 모델이다. 터보엔진이 일반적인 이 시대에 6기통 자연흡기 수평대향 엔진을 품은 고성능 스포츠카니까. 물론 911 GT3가 포르쉐에서 가장 높은 출력을 뽐내는 모델은 아니다. 하지만 포르쉐 레이싱 DNA를 가장 순수하게 표현하는 모델로서 상징성이 있다. 포르쉐, 자연흡기, 9,000RPM으로 이어지는 두근거리는 요소가 눈을 반짝이게 한다. 그런 911 GT3를 체험하는 자리이기에 다른 GT 모델들도 불러 모았다. 이번 기회에 포르쉐 GT 모델들이 선사하는 짜릿함을 계주하듯 즐겨보라는 뜻이다. 

이번 행사는 세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다. 포르쉐 GT 모델을 트랙에서 주행하는 프로그램은 하이라이트. 그 외에도 타이칸 4S와 타이칸 터보 S를 번갈아 타고서 트랙에서 달리고, 911 터보 S와 718 박스터 GTS 4.0으로 짐카나를 체험한다. 포르쉐를 구성하는 다양한 짜릿함을 부분별로 맛볼 수 있는 셈이다. 트랙에서 타이칸의 비현실적 주행 감각이 어떤 감흥을 전할까? 강력한 911 터보 S와 날렵한 718 박스터 GTS 4.0의 몸놀림은 또 얼마나 심장박동 수를 높일까? 어느 프로그램이든 포르쉐의 재미를 느낄 구성. 이러니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내비게이션 안내음에 떨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무엇을 타든 포르쉐다운

첫 번째 시간은 타이칸 4S와 타이칸 터보 S 트랙 주행. 순서가 좋다. 전기 스포츠카의 즉각적인 토크가 삽시간에 분위기를 달굴 테니까. 그러고 나서 짐카나로 심장박동 수를 높이고, 마지막에 포르쉐 GT 모델이 절정을 연출하는 순서. 곧 펼쳐질 아드레날린 퍼레이드에 흐뭇해하며 패독에 들어섰다. 타이칸 4S와 타이칸 터보 S가 숨죽이며 기다렸다. 오히려 조용해서 더 긴장감이 감돌았다. 곧 트랙에서 571마력과 680마력을 번갈아가며 흩뿌릴 전기 스포츠카가 출발 전에는 이렇게 조용하다. 그 침착함이 신선했다. 또 다른 시대의 증거다.

포르쉐 GT 모델은 
포르쉐의 스포츠성을 
온전히 느끼게 한다.
감탄사가 연달아 터지고
심장 박동 수는
어김없이 빨라진다.

우선 타이칸 4S 운전석에 몸을 넣었다. 국도에서 종일 탄 경험이 있지만, 패독에 앉으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은은하게 울리는 E-스포츠 사운드를 들으며 트랙으로 진입했다. 곧바로 절정으로 치달았다.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최대 토크가 나오는 전기차의 특성이 날개처럼 돋아났다. 도로에 밀착해서 움직이는 특유한 거동은 트랙에서도 여전했다. 공도 와인딩에서 익히 경험한 감각이지만, 속도가 훨씬 빠른 만큼 감흥은 더욱 진했다. 속도를 줄인 후 스티어링 휠을 조작하고 나서 다시 가속하는 일련의 행동에서 타이칸 4S는 차분하게 운전자를 다독였다. 고속의 감각에 흠뻑 젖더라도 굉음이 꼭 필요하지 않다고. 특유의 사운드까지 곁들여지니 트랙이 아닌 이공간 어디쯤을 달리는 기분이다. 특별한 감각이 트랙을 수놓았다.

독특한 감각이야말로 타이칸 4S가 선사하는 즐거움이다. 스포츠 주행을 새로운 감각으로 즐기게 한다. 포르쉐의 새 장이랄까. 타이칸 터보 S는 거기에 자극을 한 움큼 더 뿌렸다. 약 200마력 더 높기에 쾌감이 더 컸다. 더 과감하게 트랙을 누비게 한달까. 물론 힘이 늘어나도 차체는 시침 뚝 떼고 받아들였다. 덕분에 타이칸 4S보다 자신감이 차올랐다. 주변은 차분한데 호승심은 요란하게 치솟았다. 더 정교하게 다룰 수만 있다면 더 빨라질 거다. 타이칸 터보 S가 몸으로 알려준다. 전기 스포츠카의 매력이 있다니까. 이런 말이 입안을 맴돌았다.

다음은 911 터보 S와 718 박스터 GTS 4.0을 만날 시간이다. 짐카나는 언제나 짧고 굵은 만남을 주선한다. 천천히 알아갈 시간은 없다. 대면하고 바로 뜨겁게 달리고선 여운을 음미해야 한다. 그렇기에 더욱 강렬하다. 911 터보 S는 가장 강력한 911로 통한다. 가장 강력한 모델이 가장 빠르진 않을 수 있다. 물론 누가 타느냐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가장 강력하기에 줄 수 있는 포만감은 누가 타도 공통적으로 느낀다. 911 터보 S는 그럴 수 있는 모델이다. 전기모터의 무지막지한 토크를 뽐내는 타이칸 터보 S보다 ‘0-100’이 빠르다. 타이칸 터보 S는 2.8초, 911 터보 S는 2.7초. 0.1초 차이로 미세하지만 내연기관으로 도달한 자부심은 광대하다. 그런 상징성. 911 터보 S를 앞에 두고 짧고 굵게 만나야만 하는 현실을 잠깐 한탄했다. 코스에 뛰어들고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911 터보 S의 시공간으로 빨려 들어갔다. 911 터보 S가 포효할 때마다 성큼, 코스가 줄었다. 그때마다 출력이 넘실거렸다. 더 정교하지 못한 내 실력에 조급해졌다. 짐카나 코스는 짧고, 내 실력이 향상되기엔 주행은 찰나였다. 러버콘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데 만족해야 할까. 그럼에도 분명하게 느껴졌다. 가속페달을 밟을 때마다 풍성한 출력이 차체를 뒤흔들었다. 가장 강력한 911이라는 자부심이 출력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 풍요로움에 심취해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고 싶지 않아 혼났다.

911 터보 S와 함께 춤을:

911 터보 S와 함께 춤을:

반면 718 박스터 GTS 4.0은 한결 친숙했다. 다루기 편하고 몸놀림이 가볍달까. 911 터보 S와 붙여 놓았으니 어쩔 수 없다. 상대적으로 특징이 더 도드라졌다. 역시 짧고 굵게 만날 수밖에 없었다. 짧았지만 둘을 탄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911 터보 S는 출력이 앞서서 날 이끌었다. 그에 반해 718 박스터 GTS 4.0은 함께 춤추듯 코스를 내달렸다. 짜릿하게 휘몰아친 순간과 경쾌하게 호흡 맞춘 순간. 둘의 차이가 두 차종의 성격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절정의 삼부작, 포르쉐 GT 모델들 

드디어 대단원의 절정이 다가왔다. 포르쉐 GT 모델들이 패독에서 숨을 골랐다. 911 GT3와 718 카이맨 GT4, 카이엔 터보 GT가 나란히 서 있었다. 저마다 고유한 특성으로 포르쉐의 GT DNA를 뽐낼 준비를 끝냈다. 타는 순서는 카이엔 터보 GT, 718 카이맨 GT4, 911 GT3. 타는 순서마저 절정을 고조하기에 최적인 상태. 이렇게 딱 맞게 순서까지 드라마틱하다.

카이엔 터보 GT에 먼저 올랐다. 포르쉐에서 가장 강력한 SUV 타이틀을 꿰찼다. 최고출력 650마력. 카이엔 터보 쿠페보다 92마력 높다. 늘어난 출력만큼 폐활량을 높이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카이엔 터보 GT를 소개하는 한 문구가 모든 걸 설명한다. ‘레이스 트랙 셋업의 고성능 SUV’. 그래도 SUV인데 트랙에서 거동이 날카롭진 않겠지? 이런 우려는 코너 몇 번 지나니 흩어졌다. 타이칸의 움직임에 감탄하고, 911 터보 S와 718 박스터 GTS 4.0으로 감각을 벼렸는데도. 카이엔 터보 GT는 믿을 수 없는 몸놀림을 구사했다. 출력을 떠나 2톤 하고도 200kg이 넘는 덩치가 이렇게 흐트러지지 않고 달릴 수 있나? 자꾸 고개를 갸웃하며 코너에 진입했다. 육중한 덩치가 오히려 안정감을 높이는 듯했다. 물리적 법칙을 기술로 전환한 놀라운 순간. 안정감이 있으니 폭발적인 출력을 머뭇거리지 않고 마구 토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한계는 한참 남았다는 듯 내달렸다.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 액티브 롤 스태빌라이제이션 시스템, 리어 액슬 스티어링 같은 포르쉐의 기술들이 코너마다 머릿속에서 떠올랐다가 스쳐갔다. 괴물 같은 SUV가 나타났다고, 내리면서 중얼거렸다.

718 카이맨 GT4는 산뜻하게 트랙을 공략했다. 자연흡기 엔진의 선명한 출력은 가속페달을 밟는 즐거움을 높였다. 미드십 차체가 만들어내는 거동 역시 매끄러웠다. 얇고 높은 소리는 그 일련의 과정에서 훌륭한 배경음으로 기능했다. 세 요소의 균형이 잘 맞아떨어졌달까. 덕분에 출력을 마음껏 뽑아내 달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렇게 다음 코너를 공략해 나갔다. 718 카이맨 GT4는 돌아 나오는 순간순간 산뜻한 느낌으로 화답했다. 이럴 때 운전이 즐거워지는 법이다. 718 카이맨 GT4는 그 기분을 자극할 줄 안다.

718 카이맨 GT4의 산뜻함을 뒤로 하고 절정의 순간을 준비했다. 911 GT3가 그르렁거리며 자리를 내주었다. 계기반 가운데를 차지한 회전계 속에서 1만이라는 숫자가 도드라졌다. 그 중에 9,000을 채웠을 때 어떤 감각이 실내를 채울까? 스포츠카는 두근거리게 해야 한다. 숙명이다. 911 GT3는 회전계 숫자만으로 그 지점에 도달한다. 희소성이 이렇게 귀하다.

놓칠 수 없는 순간:

놓칠 수 없는 순간:

역시 소리가 남다르다. 가속페달을 힘껏 밟을 때마다 실내엔 함성 같은 소리가 가득 찼다. 복서엔진 특유의 걸걸한 톤이 심장을 정확히 타격했다. 신경질적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드라마틱한 소리는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았다. 물론 높은 회전수가 만들어내는 자연흡기 특유의 소리만이 911 GT3를 설명하는 건 아니다. 소리는 절정으로 치닫는 분위기를 조성할 뿐이다. 결국 풍성한 출력을 잘 받아내는 차체 감각이 핵심이다. 거듭 등장하는 코너를 911 GT3로 공략할 때마다 핵심이 무엇인지 새삼 깨달았다. 911 GT3는 앞 서스펜션이 더블 위시본 형태로 바뀌었다. 설명을 들었을 땐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거동을 체감하니 결정적 한 수였다. 인스트럭터가 놀랍게 잘 움켜쥐고 달린다며 감탄하듯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느껴졌다. 더 안정적으로 달릴 무기를 장착한 셈이다. 그렇게 전 세대 911 GT3에 비해 확실한 우위를 점한다. 신형 911 GT3는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에서 이전 모델에 비해 17초 빠른 기록을 세웠다. 무려 17초다. 난 그렇게 달리지 못하지만, 그렇게 달릴 저력은 맛볼 수 있었다. 911 GT3는 다시 자기만의 레이스를 시작한 셈이다.

이렇게 포르쉐 GT 미디어 트랙 익스피리언스가 끝났다. 각기 다른 포르쉐 스포츠카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운전했다. 너무 많은 자동차를 한꺼번에 타면 감각이 뒤엉킨다. 감상이 한데 뒤섞이기에 정신없을까? 뒤섞였기에 오히려 각 감흥이 하나로 선명하게 이어지기도 한다. 어쩌면 남은 이 하나가 포르쉐를, GT 모델을 설명하는 핵심일지도 모른다. 포르쉐 GT 미디어 트랙 익스피리언스는 두근거리면서 입장해 두근거리면서 나오게 했다. 입장할 때는 기대감에, 퇴장할 때는 언젠가 소유하는 상상에 두근거렸다. 그럴 수 있는 스포츠카, 포르쉐 GT 모델들이다.

김종훈(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종훈(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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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 소비

911 터보 S (유럽 기준)

WLTP*
  • 12.3 – 12.0 l/100 km
  • 278 – 271 g/km
  • G Class

911 터보 S (유럽 기준)

연료 소비
복합 연비 (WLTP) 12.3 – 12.0 l/100 km
복합 CO₂ 배출량 (WLTP) 278 – 271 g/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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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LTP*
  • 13.0 – 12.9 l/100 km
  • 294 – 293 g/km
  • G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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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 소비
복합 연비 (WLTP) 13.0 – 12.9 l/100 km
복합 CO₂ 배출량 (WLTP) 294 – 293 g/km
CO₂ class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