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보물

고고학 전시물과 세련된 건축물.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에 있는 다층 주차장은 현대 박물관이자 5000년 역사가 녹아 있는 곳이다.  야간 근무 중인 주차 관리인을 지하 근무지에서 만났다. 

   

봄이 오기 직전 취리히의 금요일 밤, 관객은 비극과 희극 중 택할 
수 있다. 비극은 지상의 오페라에서 볼 수 있다. 프랑시스 풀랑크(Francis Poulenc)의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Dialogues des Carmélites)>로 프랑스 혁명기를 다룬 3막으로 된 비극이다. 극이 끝날 즈음이면 수녀 16명이 단두대 아래서 생을 마감한다.

유쾌한 오페라 부파를 택할 수도 있다. 지하 주차장에서 리코 뷔르펠이 기획하는 1인극이다. 그는 주차장 관리인으로 지하 일터에서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교대 근무 시작:

교대 근무 시작:

Rico Würfel arrives at work in his 911 Turbo S Cabriolet (above). When not doing his rounds in his underground stomping ground, he can be found in the control room (below).

뷔르펠이 타고 온 자신의 흰색 911 터보 S 카브리올레는 주차장 안에서 오페라 관객들이 맡긴 자동차와 분위기가 잘 맞아떨어진다. 그는 흥미로운 대화를 술술 풀어내는 재주가 있다. 자신의 911에 관해 말할 때는 물론이고 대화 자체를 좋아한다. 이곳이 마치 뷔르펠의 지하 무대처럼 느껴진다. 오페라 하우스 주차장은 특별한 곳이라 무대 배경으로는 완벽하다. 한때 이곳 지하에 묻혀 있던 5000년 된 비밀이 궁금해서 우리는 이곳에 왔다. 

오페라 하우스:

오페라 하우스:

The Sechseläutenplatz square above ground was renovated when the parking garage was built. A view of the opera house, which opened in 1891.

스위스 대도시 취리히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이 주차장을 설계하고 건축하는 데 13년 걸렸다. 주차장은 지하로 들어갔고, 유일하게 눈에 띄는 입구만이 호기심을 자극하며 건축의 세련미를 표현한다. 특이하게도 오페라 하우스는 취리히 호수 북쪽 끝에 있고, 지하 주차장은 수역에 자리 잡았다. 주차 데크 두 개 중 상단부는 무려 수면 아래 2.5m에 있다. 

은행 금고로 유명한 이 도시의 주차장도 금고처럼 안전해 보이는데, 66대 카메라가 24시간 감시한다. 모두 288대를 이곳 젝셀로이텐플라츠(Sechseläutenplatz) 아래에 몇 시간 동안 안전하게 세워둘 수 있다. 스포츠카, 리무진, 컨버터블을 믿을 수 있는 주차 관리인에게 맡긴다. 오페라 하우스 홍보 담당 베티나 아우게(Bettina Auge)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다층 주차장? 차만 대고 나오면 되지 않나! 그러나 뷔르펠은 이 공간을 언제나 철저하게 모니터링한다. 52세인 그는 여기서 6년째 일하고 있다. 이 밝고 아름다운 기능적인 건물을 훨씬 더 친근한 장소로 만드는 사람이 바로 그다.

서둘러 교대 근무 동료와 함께 순찰할 시간이다. 그에겐 익숙하다. 물론 이 직업에도 번거로운 임무가 주어진다. 주차 데크 상단을 청소하고 기계에 걸린 티켓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도 자유 시간과 생각할 거리를 선사하는 직업이다. “내 인생에 지루할 시간은 없어요. 예측할 수 없어서 더 재미있죠”라고 말한다. 관객들과 공연장 주변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다. 뷔르펠은 오페라, 베른하르트 극장, 음악 클럽 마스코트도 잘 안다.

무르익는 분위기:

무르익는 분위기:

Video projections of the current opera program flicker across the walls and whet the visitors’ appetites for the evening’s entertainment.

저녁이 깊어 가고 공연 시작종이 울리면 무대에서 수녀들이 활보할 것이다. 지각한 관객들이 주차장에서 서두른다. 뷔르펠은 근무 구역을 돈다. 지붕 전문가인 그는 20년째 스위스에 살고 있다. 폴란드 국경 근처 구동독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데르(Frankfurt an der Oder)에서 자랐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19세였던 그는 언젠가 포르쉐를 소유하길 꿈꿨고 미래를 기대했다. “32세에 이민 왔습니다. 동료 미하엘과 남쪽으로 내려와 일자리를 찾았어요. 일은 물론이고 더 소중한 걸 얻었죠.” 그는 아내를 만났고 그녀의 아들과 함께 가족을 이뤘다. 이곳 주차장 일자리도 얻었다. “말하기를 워낙 좋아해요. 대화에는 자신 있죠.” 그는 만족하며 웃는다. “이 직장에 딱 맞아요. 물론 운도 좀 따라야죠.” 이전 그의 직업은 위험과 날씨를 극복해야 했지만, 뷔르펠은 이제 지하에서 일한다. 아침에 시작하면 점심 무렵 날씨가 어떨지 궁금하다. 

그는 박물관 경비원이기도 하다. 호수를 마주하는 주차장 반대쪽 끝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여기가 주차장에 통합된 고고학 박물관”이라고 알려준다. 마침내 이 특별한 장소의 숨은 이야기를 듣는다. 다층 주차장을 짓기 위해 굴착기로 땅을 파내자 세계적으로 중요한 수많은 유물이 나왔다.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유물은 5000여년 전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곧바로 9개월 동안 공사가 중단되었고, 최대 60명으로 구성한 고고학자 팀이 밤낮으로 유적 발굴에 착수했다. 연구자들은 이 주차장 자리에 기원전 3234년경 사람들이 살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습한 호수 바닥에 최적 상태로 보존된 정착지 유적은 취리히 주변 호상 가옥의 일부였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나무 문, 2만여 개 동물 뼈, 국자, 활, 돌도끼 등 선사 시대 연장이 포함된 놀라운 발견이었다. 현재 이 고대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다.

고고학 전시:

고고학 전시:

The parking garage invites people to linger. The museum section has artifacts from the Neolithic period and the Bronze Age on display.

주차장은 이제 현대 건축과 고고학이 만나는 볼거리가 됐다. 입구 경사로 위에는 스위스 예술가 고트프리드 호네거(Gottfried Honegger)의 조각품이 오페라 관객을 맞이한다. 암청색 방음벽은 커튼 모양을 본떴다. 극장처럼 음악과 동영상을 빔프로젝터로 벽에 재생한다. 건너편 호수 쪽에 있는 ‘고고학 창문’ 전시도 관람할 수 있다. 5000년 역사를 지닌 유물을 유리 쇼케이스에 전시 중이다. 지하 깊숙이 영원의 시간을 버틴 어망, 망토, 모자, 돌도끼 날, 나무, 뼈, 사슴뿔 공예품이 이제 깔끔하게 늘어서 있다. 호수 위에 죽마로 지은 수상 가옥 거주자들의 소유물이다. 수천 년 역사를 건너뛰어 이제는 자동차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가끔은 비현실적인 역사가 현재로 불쑥 등장하는 법이다.

주차장 일상:

주차장 일상:

Operagoers head back to their car (above). Würfel in front of his 911 – his sixth Porsche (below).
지하 설계가 화려한 오페라 무대를 지탱한다.

오페라 하우스 주차장에는 역사가 살아 숨 쉰다. 뷔르펠이 우리를 저녁 순찰에 데려간다. 강철 문이 열리고 첨단 기술 신호가 윙윙거리고 하수관 소음도 들린다. 그저 놀라울 뿐이다. 관리소에서는 카메라 이미지를 모니터로 본다. 고요한 밤이다. 그는 주차된 수많은 차를 창밖으로 내다본다. 본인도 동시대 컬렉션 소유자라며 흰색 911을 바라본다. “여섯번 째 포르쉐예요!”라고 말하며 웃는다. “한 줄로 세워두면 보기 좋을 거예요.” 포르쉐 타는 주차 관리인은 드물다. 그도 잘 안다. “스포츠카는 어린 시절 꿈이었죠. 저는 진취적이고 꿈을 따라갑니다.”

무대 위 비극은 극적인 종말을 맞고 박수와 기립박수가 터진다. 곧 집으로 가는 오페라 관객의 자동차 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릴 것이다. 리코 뷔르펠도 일을 마친다. 그는 다기통 엔진의 포효로 박수를 대신한다. “전 만족합니다”라고 작별 인사로 말한다. 이곳 스위스 오페라 하우스에서 행복을 찾은 그는 911을 타고 취리히 밤 속으로 사라진다.

Jo Berl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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