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24시간

외부에서 독일을 바라보는 이들은 곧바로 ‘아우토반’을 떠올린다. 독일 고속도로의 빠른 속도는 이 나라의 이미지가 되었다. 독일은 하지만 가로수길과 호수, 자연 그리고 고도의 문화가 어우러진 나라이기도 하다. 포르쉐 타이칸을 타고 괴테, 폰타네, 베토벤의 나라로 여행한다.

  

포르쉐 타이칸 4S (글로벌 기준)
복합 연비: 0l/100km
전력 소비량: 26.2–21.1kWh/100km
복합 CO2 배출량: 0g/km (2020/06 기준)
본 매거진에 수록된 기술 관련 수치는 국가별로 상이할 수 있습니다. 연비 및 배기가스 수치는 새로운 인증규격인 WLTP 기준에 따른 데이터입니다.

우리는 고요함과 침묵이 흐르는 시골길을 달리고 있다. 고속도로에서 24시간 레이싱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여유를 가지고 국도의 풍경을 즐기며 독일 시인과 사상가들의 낭만주의 자취를 따라 주행한다. 조심스럽게, 조용히, 포르쉐 타이칸을 타고. 바람 속 돛단배처럼 우리는 고요 속으로 미끄러진다. 이 고요는 스스로 흔들리며 다른 것들도 흔들리게 만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고, 우리는 텅 빈 도로를 달리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들을 만나러 간다. 우리는 남부 바이에른주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에서 출발해, 북부 브란덴부르크주의 작은 도시 노이루핀에도 잠시 들른다.

동화 속의 성:

동화 속의 성:

노이슈반슈타인성은 루드비히 2세 왕이 남긴 가장 유명한 유산이다.
라인 강변의 로렐라이 절벽바위:

라인 강변의 로렐라이 절벽바위: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 <로렐라이>로 유명하다.

타이칸은 마치 이동하는 동안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만 같다. 바이마르에서 괴테와 쉴러를, 브란덴부르크에서는 테오도어 폰타네를 만나고, 라인 강변의 도시 본에서는 베토벤의 250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우리의 머릿속은 서정시와 음악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남부에서 북부로, 동부에서 서부로 여행한다. 그렇다고 독일 고속도로의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직진하는 여행은 결코 아니다. 완전한 전기 스포츠카를 타고 방랑하면서 우리의 의식 세계는 더욱 더 넓어진다. 우리는 독일의 여러 가지 면모를 발견한다. 오페레타 같은 바로크 양식은 바우하우스 양식과 대조를 이룬다. 우리는 중세 시대 지역의 중심지, 고딕 양식의 성당들, 고전주의와 야생의 자연을 즐긴다.

우리의 시선은 독일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 폴란드, 체코, 프랑스까지 닿는다. 덴마크도 보고 싶지만, 북쪽의 아름다운 해변 풍경은 팬데믹 때문에 아직 막혀있다.

괴테, 실러, 그로피우스의 집을 방문하다

바이마르시는 독일 중부 지역인 튀링겐주에 있다. 도심으로 가는 길은 포석으로 깔려있다. 유명한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 겸 옛 성이 서 있는 민주주의 광장을 지난다. 우리는 타이칸을 주차해 놓고 산책을 시작한다. 요한 볼프강 괴테의 말처럼 자유롭게 걷는다. “걸어서 가본 곳이 아니면 진짜 가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정원이 딸린 한 건물에 도착한다. 이 건물에는 세계적인 작가 괴테가 바이마르에서 처음 묵었던 숙소가 있다. 1776년의 일이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이 곳에서 그는 <마왕>이라는 발라드 형식의 시를 지었고, 이 시는 오늘날까지도 학생들의 필독서에 속한다. 일름 강 너머에는 ‘프라우엔 플란’ 거리를 따라 괴테가 살았던 집이 있다. 아쉽게도 밖에서만 그 집을 볼 수 있다. 괴테는 1832년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바이마르:
바스틸 앙상블의 성문과 민주주의 광장의 칼 아우구스트 동상

사상적 자극:

사상적 자극:

2020년 초에 괴테와 쉴러 동상이 코로나 안내판을 들고 있다.

건너편에는 ‘괴테 분수’가 호젓이 찰랑거리고 그 옆에서 튀링겐 사람이 ‘로스트브라트부어스트’, 이 지역의 원조 소시지를 굽고 있다. 5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 테아터 광장에는 도시의 지성인이었던 귀족들을 상기시키는 기념비가 서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옆에는 동시대인 프리드리히 폰 쉴러가 있다. <마법사의 제자>가 <군도>를 만난다. 이 두 명의 세계문학 거장들은 바이마르와 독일문학의 황금기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후 1850년대, 프란츠 리스트와 리하르트 바그너가 작곡한 음악으로 소위 ‘은의 시대’가 이어진다. 바이마르는 20세기 또 한 번 세계의 양식을 주도한다. 바로 1919년 이곳에 바우하우스가 설립되었을 때다. 바우하우스는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예술을 산업화에서 떼어내고자 했고 예술작품을 부활시키려고 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바로 이것이 전 세계 건축에 대혁명을 불러왔던 현대 건축과 사상의 신조였다. 고전주의 바이마르 앙상블과 같이, 바우하우스의 작품인 하우스 암 호른(Haus am Horn) 역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꼽힌다.

데사우:

데사우:

여기에서 발터 그로피우스가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건축물을 창조했다.

작센 스위스

타이칸이 전기를 충전하는 동안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엘베 사암 산맥에 대해서 살펴본다. 이곳에서 소설가 에리히 케스트너가 태어났다. 전 시대 독일인들에게 <에밀과 탐정들>, <쌍둥이 로테> 등 그의 동화책이 없는 어린시절은 상상할 수 없다.

젬퍼오퍼:

젬퍼오퍼:

극장 앞 광장은 텅 비어있다. 바퀴 구르는 소리만 드레스덴의 고요를 깨며 지나간다.

타이칸 배터리가 100퍼센트를 가리키고, 우리는 몽환적인 어린 시절의 꿈에서 깨어난다. 몇 킬로미터 더 가기도 전에 독특하고 기이한 풍경이 펼쳐진다. 가파른 사암 바위들이 솟아있다. 수백만 년에 걸쳐 물과 바람에 깎여 만들어진 형상들이다. 우리는 오래 전 학교의 지리 수업을 떠올린다. 흔들리는 지구와 대륙이동설. 엘베 강을 건널 때 우리는 판 구조론에 대한 생각에서 깨어난다. 두 나라를 결합하는 봉합선 같은 섬세한 물줄기의 강. 이 강을 사이로 작센주 ‘바드 샨다우’와 체코의 ‘데친’ 지역이 마주보고 있다. 국경 근처에서 우리는 작센 스위스 국립공원의 대표적인 산인 릴리엔슈타인을 본다. 그 위에서 우리는 드레스덴의 프라우엔 교회를 볼 수도 있다. 차를 계속 몰아간다. 아름다운 피르나 지역을 지나 작센주 주도인 드레스덴 방향으로 향한다. 드레스덴에서 우리는 또 하나를 배운다. 테오도르 폰타네는 이곳에서 약사 보조원으로 일했다. 여기에는 괴테와 쉴러도 그 모습을 영원히 남기고 있는데, 세계적인 작가들의 동상과 함께 오페라 하우스 ‘젬퍼오퍼’ 앞에 그들이 있다. 여러 번 파괴되었던 이 건축물은 건축가인 고트프리드 젬퍼의 이름을 달고 있다. 1878년 성대한 오픈식에서는 괴테의 작품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도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최근에는 무대에 적막이 흐른다.

프라우엔 교회:

프라우엔 교회:

교회 지붕은 재건을 상징하고, 텅 빈 포석 도로의 골목 위로 우뚝 솟아있다.
릴리엔슈타인:

릴리엔슈타인:

엘베 강 오른쪽에 놓인 이 산의 높이는 415미터이다.

폰타네와 함께 브란덴부르크를 통과한다

가로수 나무 끝이 서로 조심스럽게 스치고 나무가지들이 드리운 그림자는 아스팔트에 무늬를 아로새긴다. 브란덴부르크 경계 지역의 로맨틱한 가로수 길은 마치 그림 같다. 전기 스포츠차로 소리 없이 이곳을 가로지르는 동안 폰타네가 우리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그는 한때 이렇게 썼다. “나는 브란덴부르크 지역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내가 감히 희망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발견했다.” 테오도르 폰타네, 시적 사실주의로 유명한 그는 1819년에 노이루핀에서 약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베를린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브란덴부르크의 작은 지역이다. 그는 여행하기를 좋아했지만, 이국 땅에서는 언제나 고향을 그리며 강과 호수, 제방, 숲의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문학작가이자 극비평가였던 그는 브란덴부르크와 포어포메른의 수많은 가로수 길을 “여행길의 초록 숲”이라고 불렀다. 잎이 무성한 여름 가로수길 아치가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구보브 성:

구보브 성:

폰타네 소설 <폭풍 이전>에 나오는 배경

폰타네는 <마르크 브란덴부르크 여행기>에서 오늘날 폴란드 국경을 따라 거의 60킬로미터나 되는 오더브루흐 지역을 다루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에피 브리스트>는 1896년에 출간되었는데 그의 사망 2년 전이었다. 이곳의 자전거길을 따라가다 보면 폰타네와 ‘바드 프라이엔발데’ 거리의 폰타네 하우스,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약국 앞을 지난다. 테오도르 폰타네의 첫 이름은 사실 하인리히였다. 그의 작품과 달리 이 이름은 잊혀지고 말았다. 본에서 축제가 열린다.

문화의 항구 그로스 노이엔도르프:

문화의 항구 그로스 노이엔도르프:

오더브루흐의 반짝이는 진주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폰타네는 긴 가로수 길에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라인 문화제에서 베토벤

베토벤 생가:

베토벤 생가:

명예로운 이 건물은 유럽연합의 우수한 문화유산으로서 ‘유로파 노스트라ʼ에 선정됐다.

본에서 축제가 열린다. 2020년은 루드비히 판 베토벤의 해이다. 어쩌면 모든 시대를 걸쳐 가장 위대한 작곡가인 그가 250년 전 이곳 라인 강가에서 태어났다. 특출한 재능, 세계에서도 가장 큰 축복을 받은 피아니스트.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마도 교향곡 5번일 것이다. 첫 네 음률은 고전음악 중에서도 우리의 귓가를 맴돌며 떠나지 않을 영원한 멜로디이다. 베토벤 자신은 20대 후반에 난청이 되었고 40대 후반에는 거의 청각을 잃었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해서 작곡을 했고 눈으로 소리를 들었다. 본가쎄(Bonngasse) 20번지에 바로크 풍의 석조 전면을 가진 그의 생가가 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이웃한 건물에는 실내악 연주홀과 베토벤 기록물 보관실이 있다. 이 작곡가가 프리드리히 쉴러의 유명한 <환희의 송가>를 교향곡 9번 4악장에 영원히 담을 때, 어쩌면 그는 실제로 저기 저 창가에 앉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야성적인 헤어스타일의 이 천재는 근처의 지벤게비르게 산으로 여행하기를 좋아했다. 무엇보다도 이 낮은 산맥의 서쪽 가장자리에 있던 ‘페터스베르크’에 오르곤 했다. 그곳에는 333미터 높이로 이 산과 똑같은 이름의 호텔이 솟아있고, 주요 국가들의 수장이 묵었다.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나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소비에트 연방의 서기장으로 왔고, 훗날에는 그의 후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도 왔었다.

엘리자베스 2세이든 빌 클린턴이든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이곳 높은 곳에서 이 강의 물결을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1844년 하인리히 하이네의 풍자적인 서사시 <독일, 어느 겨울동화>에서 ‘아버지 라인’이라고 불렸던 바로 그 강이다. 1232.7킬로미터 길이의 이 강은 예전에는 분단의 상징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국가를 서로 이어주는 물길로 당당하면서도 고요한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는 이 고요하고 거룩한 모습을 감상한다.

페터스베르크:

페터스베르크:

쾨닉스빈터, 분단 독일의 수도였던 본의 건너편에 역사적인 산이 우뚝 솟아있다.
Christina Rahmes
Christina Rahmes